엄마 - 여동생편

2013. 7. 15. 15:33 - 엄작가 dbjang

 

"너랑 언니는 학교를 가야 하니깐 우선 현수만 데리고 갈께. 엄마가 올 때까지 공부 잘 하고 있어. 알았지?"

초등학교 시절 이 말을 남기고는 엄마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그 당시 언니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고 나는 오전 수업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있었다.

막내인 현수랑 같이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현수를 데리고 놀이터로 나오라고.

 

우리는 한 달 전에 큰 집으로 모두 이사를 왔다.

시골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개와 닭을 키우며 생활을 해왔었는데 어느날 아버지가 모든 가축들을 파셨다.

큰 아버지댁으로 이사를 간다는 것이였다.

엄마는 반대를 했지만 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짐을 꾸리셨다.

서울로 올라온 후 아버지는 큰 아버지의 소개로 버스 운전을 시작하셨다.

그 때 우리 짐들은 모두 큰 집 거실에 놓여있었다.

엄마는 올라온 지 얼마되지 않아 정육점을 하시는 큰 어머니가 집안꼴이 이게 뭐냐며 엄마를 몰아세워 크게 다투신 후 시골로 내려가셨다.

우리는 할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 학교를 다녔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정확히 기억은 나질 않는다.

내가 수업중이였는지 아니면 하교를 한 후 였는지.

우리 집에 불이 났다.

옥탑방에 소년가장이 동생들을 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그 집에서 불이 나 우리 집까지 불이 옮겨붙었다.

우리 집은 다 타버렸다.

정확히 말을 하자면 거실을 모두 태워버려 우리 짐들은 모두 재로 바뀌었다.

이 날 내가 119에 신고를 한 것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소방차가 다녀간 후 우리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나는 조심스레 올라갔다.

그 사이에는 전학을 오기 전 시골 친구들이 나에게 선물해 준 둘리모양 지우개가 불에 그을려 있었다.

그 지우개를 주워 주머니에 넣고는 다시 내려왔다.

우리는 하루 아침에 집이 하늘로 솟아버렸다.

 

그리고 며칠 뒤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엄마는 동생만 데리고 다시 가버린 것이다.

내가 동생을 데리고 나왔지만 엄마는 내 손을 잡지 않고 동생 손을 잡고 가버렸다.

엄마는 울며 다시 온다고는 했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집에 돌아온 후 언니에게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하지만 울었던 기억은 난다.

엄마는 곧 다시 올라와 짐을 정리해서 우리는 조그만 반지하방으로 이사를 갔다.

가난했지만 모두가 모여 산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그 기억에 가끔은 눈물이 난다.

 

 

(이런 기억이 여동생에게 있는 줄은 몰랐다.

여동생이 막내를 엄마에게 데려다 준 것도, 그게 아직까지도 기억이 남아 생각이 나는 것도.

뭐든지 마음대로 다 하고 하고 싶은 건 꼭 해야만 하는 그런 둘째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마 엄마는 이 사실을 모를 것이다.

가까이에 있던 나도 몰랐으니까.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여동생은 지금도 여전히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하고 사고 싶은 건 제부의 동의 없이도 산다.

그 점은 부럽기도 하다. :)

상냥하면서도 저돌적인 여동생을 보자면 가끔은 짠하다.

나이가 듦에 따라 마음은 더 약해지는 것 같다. )

 

'습작노트 > 엄마의 거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 - 여동생편  (0) 2013.07.15

다른 카테고리의 글 목록

습작노트/엄마의 거울 카테고리의 포스트를 톺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