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토마토

2012. 4. 28. 12:23 - 엄작가 dbjang

또야.

라고 채원은 생각을 한다.

학교 옥상에 컨테이너를 이용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아리방 중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작업실에 와 보니 올해 복한한 선배인 지태가 토마토를 입에 한 입 베어 물고 사포질을 하고 있다.

"왔냐?"

사포질을 잠깐 멈추고 흘깃 쳐다보곤 다시 사포질을 계속 한다.

 

쓱싹쓱싹.

이 소리 외엔 사람소리가 들리질 않는다.

채원은 지태를 보다가 창 틀에 놓여있는 나무로 만든 네임택을 바라본다.

기억의 한 조각.

지붕 있고 창문이 있는 집 모양에 창문안에 새겨진 글자.

지태가 처음 동아리를 만들고 동아리 네임택을 나무로 새겨서 만든 것이였다.

 

채원은 처음엔 동아리에 들 생각이 없었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지라 입학 후 집에 일찍 가기 싫은 핑계로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떼우다 집에 가곤 했다.

공학관에서 가장 멀리 위치한 도서관을 가기 위해선 신입생을 유치하기 위한 동아리에서 나온 선배들을 뚫고 지나가야만 했다.

어떤 유혹도 뿌리치고 도서관에 다다랐을 무렵, 입구로 들어가는 외길에 세워둔 벤치를 지나칠 때였다.

토마토를 우적우적 먹고 있던 남학생이 채원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작품 하나 만들어볼래요?"

이 말 한 마디 하고는 다시 토마토를 베어문다.

이 남학생이 사포질하던 지태.

오전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을 가는 길이여서 점심을 도서관 매점에서 해결하고자 했던 채원은 토마토를 보자 갑자기 입 안에 침이 고였다.

"토마토 하나 더 있어요?"

라고 묻는 채원의 말에 지태는 별 당황하는 기색없이 약간은 설익은 토마토를 가방에서 꺼내 건네준다.

"생각 있으면 동아리 호실이 종이에 표시되어 있으니깐 오세요."

라는 말만 남기곤 지태는 가방을 챙겨 동아리 홍보에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곳으로 향해 걸어간다.

채원은 뒤돌아서서 지태를 보고 뭔가 민망했을 때 취하는 입을 한쪽으로 당기는 표정을 하고선 토마토를 한 입 먹는다.

아직은 토마토의 철이 아니라 달지도, 새콤하지도 않는 맛.

도서관 입구에 들어서며 문득 손에 들린 종이를 들여다본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나만의 책장, 나만의 수납함. 만들어 보실래요? <기억의 한 조각> 백호관 동아리방 911호로 오세요.' 라는 문구와 함께 나무틀로 만든 조그만 서랍장 같은 미니어처가 사진으로 인쇄가 되어 있다.

'우리 학교 건물이 9층 건물이 있었나? 생각보다 높구나.'

채원은 종이를 접어서 가방 속에 집어놓고 굵은 대만 남은 토마토를 휴지통에 버린다.

3층의 종합자료실로 걸어올라가다 다시 내려와 종이를 꺼내들고 백호관으로 향한다.

 

지태와의 첫 만남이였다.

채원은 지태가 토마토를 무척이나 좋아하나 보다라고 단순히 생각을 했었다.

알고 보니 기억의 한 조각 동아리에서 한 달에 한 번 봉사를 나가는 고아원에서 키우는 토마토를 학우들에게 팔고 남은 토마토는 모두 지태가 산다고 했다.

'토마토는 채소인데 사람들이 과일로 먹잖아. 채소든 과일이든 사람들이 찾으면 괜찮은 먹을거린거야.

누구든 찾는 누군가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인거구.'

지태가 고아원을 다녀오면서 한 말이였다.

 

"오늘은 뭘 그렇게 만드시나요?"

채원은 지태에게 멀지 않은 곳에 널브러져 있던 가방 안에서 토마토를 하나 꺼내서 먹으며 말한다.

"연우가 상장을 하나 받아왔대. 선행상. 액자 만들어줄려고."

연우는 봉사 중인 고아원의 6학년 짜리 여자아이다.

유난히 지태를 잘 따르고 밝고 명랑한 아이였다.

고아원에서 토마토를 키우게 된 것도 연우때문이였다고 한다.

어릴 때 길을 잃어서 고아원에 오게 되었는데 생각이 나는 건 토마토가 가득한 마당이였다고.

지금도 연우는 토마토에 물을 주면서 그 마당을 기억하곤 한다.

 

채원은 지태 옆에 놓인 또 다른 사포를 들고 창가로 와 나무 하나에 사포질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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